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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음치법(痰飮治法)

實脾土燥脾濕是治其本【丹心

○虛人中焦有痰胃氣亦賴所養卒不可便攻攻盡則愈虛【丹心

○凡治痰用利藥過多致脾氣下虛則痰反易生而多法當補脾胃淸中氣則痰自然運下乃治本之法也【丹心


비위(脾胃)를 든든하게 하고 비습(脾濕)을 마르게 하는 것이 치료의 기본이다【단심】.

○ 허(虛)하나 중초(中焦)에 담이 있으며 위기(胃氣)가 그로부터 보충받기 때문에 갑자기 담을 몰아내는 약을 써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다 몰아내면 더 허해지기 때문이다【단심】.

○ 담을 치료할 때에 설사시키는 약을 지나치게 쓰면 비기(脾氣)가 처지고 허해지기 때문에 담이 오히려 쉽게 생기고 많아진다. 치료는 반드시 비위를 보하고 중초의 기를 맑아지게 해야 담이 저절로 삭는다. 이것이 바로 근본을 치료하는 방법이다【단심】.


○治痰順氣爲先分導次之然氣升屬火因氣動者曰痰氣宜順氣導痰湯因火動者曰痰火宜淸熱導痰湯(方見上)因濕動者曰濕痰導痰湯通用二陳湯入門

○陽虛腎寒冷痰溢上或昏暈夜喘上氣者八味丸(方見虛勞)黑錫丹(方見入門)鎭墜之【入門

○脾虛不能運化者六君子湯竹瀝 薑汁補中益氣湯半夏 竹瀝 薑汁入門


○ 담을 치료할 때에는 먼저 기를 고르롭게《順》 한 다음에 담을 헤치고 삭게 해야 한다. 기가 위로 올라가는 것은 화(火)에 속한다. 기로 말미암아 담이 동한 것을 담기(痰氣)라고 하는데 순기도담탕을 쓰는 것이 좋다. 화로 말미암아 담이 동한 것을 담화(痰火)라고 하는데 청열도담탕(淸熱導痰湯)( 처방은 위에 있다)을 쓰는 것이 좋다. 습(濕)으로 말미암아 담이 동한 것을 습담(濕痰)이라고 한다. 이때에는 도담탕을 쓰는 것이 좋은데 이진탕도 두루 쓴다【입문】.

○ 양(陽)이 허하고 신(腎)이 차서 냉담(冷痰)이 넘쳐나고 올라가기 때문에 혹 어지럼증이 나고 밤에 숨이 차며 기운이 치밀어 오르는 것은 팔미환(八味丸)( 처방은 허로문에 있다)흑석단(黑錫丹)(처방은 『입문』에 있다)으로 내리눌러야 한다【입문】.

○ 비(脾)가 허해서 음식이 잘 소화되지 않는 데는 육군자탕죽력(竹瀝)강즙(薑汁)을 넣어 쓰거나 보중익기탕반하(半夏)죽력(竹瀝), 강즙(薑汁)을 넣어 써야 한다【입문】.


張子和曰飮無補法必當去水故用汗吐下三法治人常愈然亦有挾寒挾虛之證又有血氣虧乏之人理宜導去痰滯又當補接兼行又難拘於子和之三法也【丹心

○痰生於脾胃治法宜實脾燥濕又隨氣而升宜順氣爲先分導次之又氣升屬火順氣在於降火【醫鑑


장자화(張子和)가 “담음병(痰飮病) 때 보하는 방법은 없다. 이때에는 반드시 수기(水氣)를 빼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땀을 내게 하는 것, 토하게 하는 것, 설사시키는 것 등 3가지 방법을 써서 치료해야 잘 낫는다. 그런데 한증(寒證)과 허증(虛證)이 겹쳤거나 혈기가 부족하면 치료할 때에 몰려 있는 담을 풀려 나가게 하면서 반드시 보하는 것을 겸해야 한다. 그러므로 장자화의 3가지 방법에 구애될 필요는 없다【단심】.

○ 담(痰)은 비위(脾胃)에서 생기므로 치료는 비를 든든하게 하고 습을 마르게 해야 한다. 그리고 담은 기를 따라 위《上》로 올라가기 때문에 먼저 기를 고르롭게《順》 하고 다음에 담을 헤치고《分》 삭게 해야 한다. 기가 위로 올라가는 것은 화(火)에 속하기 때문에 기를 고르롭게《順》 하는 것이 화를 내리는 것으로 된다【의감】.


『難經』曰腎主五液化爲五濕濕能生痰痰者因咳而動脾之濕也半夏能泄痰之標不能泄痰之本泄本者泄腎也十棗湯三花神佑丸是也(並見下門)熱痰則淸之用石膏 靑黛 梔子 黃芩 黃連寒痰則溫之用半夏 乾薑 附子 肉桂燥痰則潤之用瓜蔞仁 杏仁 五味子 天花粉濕痰則燥之用蒼朮 白朮 厚朴 茯苓風痰則散之用南星 皂角 白附子 竹瀝老痰則軟之用海石 芒硝 瓜蔞仁 枳殼 便香附食積痰則消之用山査子 神麴 麥芽大要人參 甘草以補脾白朮 半夏以燥濕陳皮 靑皮以利氣茯苓 澤瀉以渗水【丹心


『난경』에는 “신(腎)이 5액(五液)을 주관하는데 5액은 5가지 습으로 변한다. 습은 담을 생기게 한다. 기침하는 데 따라 움직이는 담은 비(脾)의 습(濕)이다. 반하(半夏)이 표(標)에 있는 담은 잘 삭이지만 본(本)註-0181)에 있는 담은 잘 삭이지 못한다. 본에 있는 것을 삭이려면 신(腎)을 사해야 하는데 십조탕삼화신우환이 그런 약이다(처방은 다 아래에 있다).”

○ 열담(熱痰)은 시원하게 해야 하므로 석고(石膏), 청대(靑黛), 치자(梔子), 황금(黃芩), 황련(黃連)을 쓴다.

○ 한담(寒痰)은 덥게 해야 하므로 반하(半夏), 건강(乾薑), 부자(附子), 육계(肉桂)를 쓴다.

○ 조담(燥痰)은 눅여 주어야 하므로 과루인(瓜蔞仁), 행인(杏仁) , 오미자(五味子), 천화분(天花粉) 를 쓴다.

○ 습담(濕痰)은 마르게 해야 하므로 창출(蒼朮), 백출(白朮) , 후박(厚朴), 복령(茯苓)을 쓴다.

○ 풍담(風痰)은 헤쳐야 하므로 남성(南星), 조각(皂角), 백부자(白附子), 죽력(竹瀝)을 쓴다.

○ 노담(老痰)은 물렁물렁해지게 해야 하므로 해석(海石), 망초(芒硝), 과루인(瓜蔞仁), 지각(枳殼), 향부자(香附子) 동변에 법제한 것를 쓴다.

○ 식적담(食積痰)은 삭아지게 해야 하므로 산사자(山査子), 신국(神麴), 맥아(麥芽)을 쓴다.

○ 치료에서 중요한 것은 인삼(人蔘)감초(甘草)로 비(脾)를 보하고 백출(白朮)반하(半夏)으로 습(濕)을 마르게 하고 진피(陳皮)청피(靑皮)로 기를 잘 돌게 하며 복령(茯苓)택사(澤瀉)로 물기를 빠지게 하는 것이다【단심】.

태잉지시(胎孕之始)註-002

『聖惠方』曰天地之精氣化萬物之形父之精氣爲魂母之精氣爲魄一月懷其胎如酪二月成其果而果李相似三月有形像四月男女分五月筋骨成六月鬢髮生七月遊其魂而能動右手八月遊其魄而能動左手九月三轉身十月滿足母子分解其中有延月而生者富貴而壽有月不足者貪賤而夭

『성혜방(聖惠方)』註-0003)에는 “천지의 정기는 만물의 형체가 된다. 아버지의 정기는 혼(魂)이 되고 어머니의 정기는 백(魄)이 된다. 임신 1달이 되면 그 태(胎)가 졸인 소젖《酪》 같고 2달이 되면 추리열매《果李》만하다. 3달이 되면 사람의 형태를 이루고 4달이 되면 남녀가 구별된다. 5달이 되면 뼈와 힘줄이 생기고 6달이 되면 머리털이 생긴다. 7달이 되면 혼이 작용하고 오른손을 움직인다. 8달이 되면 백이 작용하고 왼손을 움직이며 9달이 되면 몸이 세번 돌아간다. 10달이 되면 모든 것이 갖추어짐과 함께 어머니에게서 떨어져 해산하게 된다. 그중 10달이 좀 지나서 낳은 아이는 잘살면서 오래 살고 달이 차기 전에 낳으면 가난하게 살면서 일찍 죽는다”고 씌어 있다.

上陽子曰人初受氣也九日而陰陽大定四十九日而始胎然後七日而一變故滿三百有六日者滿二百九十六日者皆上器也有二百八十六日者二百六十六日者中器也有二百五十六日者二百四十六日者下器也盖天干甲必合己而方生地支丑必合子而方育自非天地合德則人必不生也故云九月神布氣滿而胎完亦云十月懷胎也此天地之德合於氣而後生也

상양자(上陽子)는 “사람은 처음 기를 받을 때에 9일이 되면 음양이 정해지며 49일이 되면 먼저 태가 생긴다. 그 후 7일 만에 한번씩 변하기 때문에 만 306일이나 296일이 되어 낳은 아이는 상등인품이 되고 286일이나 266일이 되어 낳은 아이는 중등인품이 되며 256일이나 246일이 되어 낳은 아이는 하등인품이 된다.註-0004) 대체로 천간(天干)인 갑(甲)은 반드시 기(己)와 합쳐야 곧 낳게 되고 지지(地支)인 축(丑)은 반드시 자(子)와 합쳐야 곧 자란다. 또한 천지의 덕이 합치지 않고서는 사람이 생겨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9달이 되면 의식이 생겨나고 기가 그득 차서 태아가 다 자란다. 또한 태아가 10달 동안 태(胎) 속에 있다가 천지의 덕이 기(氣)와 합친 다음이라야 나오게 된다”고 하였다.

《註-002》 임신의 시초《胎孕之始》 : 이 내용은 임신한 후 10달 동안 태아의 발육상태를 해부생리적 변화과정으로 설명한 것이 아니라 회남자가 음양5행설에 따라 추상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註-003》 『성혜방(聖惠方)』 : 992년에 편찬한 책인데 1백권으로 된 『태평성혜방』을 말한다.

《註-004》 옛사람들은 천간과 지지의 배합에 의하여 임신해서부터 출생할 때까지의 소요되는 날짜가 306일 혹은 246일, 296일, 286일 등으로 고정되어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 면 갑자일에 임신이 되었다면 반드시 갑자일과 배합되는 기축일, 즉 266일에 가서 아이를 낳고, 을축일에 임신이 되었다면 반드시 276일이 되는 경자일에 가서 아이를 낳는다고 하는 설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형기지시(形氣之始)

『乾鑿度』云天形出乎乾有太易太初太始太素夫太易者未見氣也太初者氣之始也太始者形之始也太素者質之始也形氣已具而痾痾者瘵瘵者病病由是萌生焉人生從乎太易病從乎太素

『건착도(乾鑿度)』에는 “하늘에서는 형체가 건(乾)에서 나오는데 이에는 태역(太易), 태초(太初), 태시(太始), 태소(太素)가 있다. 태역은 아직 기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고 태초는 기가 나타난 시초이며 태시는 형체가 나타난 시초이고 태소는 물질의 시초이다. 형체와 기가 이미 갖추어진 뒤에는 아(痾)가 되는데 아란 것은 피로한 것이고 피로한 것은 병인데 병이 여기에서 생긴다. 사람은 태역으로부터 생기고 병은 태소로부터 생긴다”고 씌어 있다.

『參同契』註曰形氣未具曰鴻濛具而未離曰混論『易』曰易有太極是生兩儀易猶鴻濛也太極猶混淪也乾坤者太極之變也合之爲太極分之爲乾坤故合乾坤而言之謂之混淪分乾坤而言之謂之天地列子曰太初氣之始也太始形之始也亦類此

『참동계(參同契)』의 주해에는 “형체와 기가 다 갖추어지지 못한 것을 홍몽(鴻濛)이라고 하였고 형체와 기가 갖추어졌으나 갈라지지 않은 것은 혼륜(混淪)이다”고 하였다. 『주역』에는 “역(易)에는 태극(太極)이 있어 이것이 양의(兩儀)를 생기게 한다”고 씌어 있다. 역은 홍몽과 같으며 태극은 혼륜과 같다. 건곤(乾坤)은 태극이 변화된 것인데 합하면 태극이 되고 갈라지면 건곤이 된다. 때문에 건과 곤이 합한 것을 혼륜이라 하며 건과 곤을 갈라서 말할 때에는 천지(天地)라고 한다. 열자(列子)가 말하기를 “태초는 기의 시초이고 태시는 형체의 시초이다”고 하였으니 이것도 역시 유사한 말이다.

수요지이(壽夭之異)

『素問』黃帝曰余聞上古之人春秋皆度百歲而動作不衰今時之人年半百而動作皆衰者時世異耶人將失之耶岐伯對曰上古之人其知道者法於陰陽和於術數飮食有節起居有常不妄作勞故能形與神俱而盡終其天年度百歲乃去今時之人則不然以酒爲漿以妄爲常醉以入房以慾竭其精以耗散其眞不知持滿不時御神務快其心逆於生樂起居無節故半百而衰也

『소문』에는 “황제가 묻기를 ‘내가 듣기에는 상고시대의 사람은 모두 100살까지 살아도 동작이 떠지지 않았다《不衰》고 한다. 그런데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50살만 되면 동작이 모두 떠지는데 이것은 시대의 차이에 의한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섭생을 잘못한 데 있는가.’ 기백이 대답하기를 ‘상고시대의 사람들은 양생하는 도리를 알았기 때문에 음양의 이치에 잘 순응했고 몸을 단련하는 방법에 능숙하며 음식도 절도 있게 먹고 일상생활도 규칙적으로 하였다. 또한 허투루 과로하지 않았기 때문에 몸과 정신이 다 건전해서 100살을 더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것은 술을 물 마시듯 하고 취한 상태에서 성생활을 과도히 하여 정액을 줄어들게 함으로써 그 진기(眞氣)를 간직해 두지 못하고 또 아무 때나 성적 만족만을 추구하며 일상생활에서 절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50살이 되면 쇠약해진다’”고 씌어 있다.

虞搏曰人之壽夭各有天命存焉夫所謂天命者天地父母之元氣也父爲天母爲地父精母血盛衰不同故人之壽夭亦異其有生之初受氣之兩盛者當得上中之壽受氣之偏盛者當得中下之壽受氣之兩衰者能保養僅得下壽不然多夭折雖然或風寒暑濕之感於外飢飽勞役之傷乎內豈能一一盡乎所稟之元氣也故上古聖人嘗百草製醫藥乃欲扶植乎生民各得盡其天年也

우박(虞搏)은 “사람이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은 각각 천명(天命)에 달린 것이다. 천명이라는 것은 천지와 부모에게서 받은 타고난 원기를 말한다. 아버지는 천(天)이 되고 어머니는 지(地)가 된다. 아버지의 정과 어머니의 혈이 왕성하고 약해지는 것이 같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오래 살고 일찍 죽는 데도 역시 다른 것이다. 사람이 원기를 받고 태어날 때 부모가 다 튼튼하면 반드시 최고로 오래 살 수 있다. 그리고 원기를 받을 때 어느 한쪽 부모만 튼튼하면 반드시 보통 정도와 그 아래로 오래 살고 원기를 받을 때 부모가 다 쇠약하면 잘 보양해야 겨우 최하로 오래 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흔히 일찍 죽게 된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혹 풍(風), 한(寒), 서(暑), 습(濕)의 외사(外邪)에 감촉되거나 굶거나 과식하거나 과로로 내상(內傷)까지 받게 된다면 어찌 모두가 타고난 원기대로 살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상고시대의 성인들은 1백가지 풀을 맛보고 병에 해당한 약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각기 자기의 명대로 살 수 있도록 도우려고 하였던 것이다”고 하였다.

『傳』曰修身以竢命而已必須盡人事以副天意則凶者化吉亡者得存未嘗令人委之於天命也是故醫者可以通神明而權造化能使夭者壽而壽者仙醫道其可廢乎

『전(傳)』에는 “몸을 수양하여 명대로 살 것을 바랄 뿐이라고 하였으니 반드시 사람으로서 할 도리를 지키고 자연법칙에 적응하여 생활한다면 나쁜 것도 좋은 것으로 만들 수 있고 죽을 것도 살릴 수 있으므로 언제나 사람의 생명을 천명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다. 의사는 의술에 정통하여 능수가 됨으로써 능히 일찍 죽을 사람을 오래 살게 하며 오래 사는 사람은 더 오래 살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의술은 끝이 없는 것이다”고 씌어 있다.

천초(川椒)

堅齒髮除齒痛【『本草』

○齒痛醋煎含漱吐之【『本草』

○凡齒痛惟藉川椒麻痺熱痛勿用【『直指』

○牙齒痛川椒露蜂房等分爲末每二錢入鹽一匙水煎含漱吐之名「如神散」【『局方』

이빨과 머리털을 충실하게 하고 이빨이 아픈 것을 멎게 한다【『본초』】.

○ 이빨이 아플 때에는 식초에 달여 양치한 다음 뱉아 버리면 된다【『본초』】.

○ 이빨이 아픈 데는 반드시 천초(川椒)를 써야 통증이 멎는다. 그러나 열로 아픈 데는 쓰지 말아야 한다【『직지』】.

○ 이빨이 아픈 데는 천초(川椒)노봉방(露蜂房)을 같은 양으로 하여 쓰는데 가루내어 한번에 8g씩 소금(鹽) 1숟가락과 함께 물에 달여서 물고 양치한 다음 뱉아 버린다. 이 약을 「여신산(如神散)」이라고도 한다【『국방』】.

수양고치법(修養固齒法)

百物養生莫先口齒不漱不洗損蠹之媒凡暑毒酒毒常伏於口齒之間莫若時時洗漱之爲愈也晨興洗畢灌漱一口吐出掌中就掌滌眼自覺光明終身行之可爲妙法【『直指』

○齒宜朝暮叩以會神一云以集身神若卒遇凶惡當叩左齒三十六名曰打天鍾若辟邪穢叩右齒名曰搥天磬若存念至眞叩中央齒名曰鳴天鼓【『養性』

○凡人患齒不能食果菜者皆齒露也爲鹽湯含漱叩齒神效《類聚》

○每晨起以一捻鹽納口中以溫水含揩齒及叩齒百遍爲之不絶不過五日齒卽牢密【『千金』

○凡飮食訖輒以濃茶漱口煩膩旣去而脾胃不知凡肉之在齒得茶漱滌不覺脫去而不煩挑剔也盖齒性便苦緣此漸堅牢而齒蠹且自去矣【『延壽』

○食畢漱口數過齒不炷養生家晨興叩齒永無齒疾【『延壽』

○附齒有黃黑色物似爛骨之狀者名爲齒牀治齒者先看有此物卽用疳刀掠去之否則齒不着齦也【『千金』

○一人中年得風疾上下齒常磨切相叩甚有聲響緣此得壽一百二十歲【『抱朴』

여러 가지 양생법(百物養生) 가운데서 입 안과 이빨을 양생하는 법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양치를 하지 않거나 입 안을 가시지 않으면 벌레가 생길 수 있는 터전으로 된다. 더위독《暑毒》이나 술독《酒毒》은 항상 입 안과 이빨 사이에 잠복한다. 그러므로 때때로 입 안을 가시거나 양치하는 것이 좋다. 새벽에 일어나서 양치한 물을 한 모금 손바닥에 뱉아 눈을 씻으면 눈이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일생 동안 하는 것이 좋다【『직지』】.

○ 아침 저녁으로 이빨을 맞쪼아서《叩》 신기(神氣)를 모아야 한다. 또한 몸의 신기《身神》가 이빨에 모이게 해야 한다. 만일 험악한 일을 당했을 때에는 왼쪽 이빨을 36번 쪼아야 하는데 이것을 타천종(打天鍾)이라고 한다. 나쁜 병독을 예방하려면《辟邪穢》 오른쪽 이빨을 쪼아야 하는데 이것을 추천경(搥天磬)이라고 한다. 만일 정신을 수양하려면 앞이빨을 쪼아야 하는데 이것을 명천고(鳴天鼓)라고 한다【『양성』】.

○ 사람들이 이빨을 앓을 때 과실과 채소를 먹지 못하는 것은 다 이뿌리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끓인 염수(鹽水)로 양치한 다음 이빨을 맞쪼으면《叩》 잘 낫는다【『유취』】.

○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소금(鹽) 한 자밤을 입 안에 넣고 더운물을 물고 이빨을 문지른 다음 이빨을 1백번씩 맞쪼는 것을 계속하면 5일이 지나지 않아 이빨이 든든해지고 빽빽해진다【『천금』】.

○ 음식을 다 먹은 다음 곧 진한 찻물《濃茶》로 입 안을 가시면 입 안이 텁텁한 것과 이빨 때《膩》가 다 없어지므로 비위(脾胃)에는 아무렇지도 않다. 이빨에 고기가 끼인 것은 찻물로 양치하고 가시면 저도 모르게 다 빠져 나온다. 그러므로 이빨을 쑤시거나 후벼 낼 필요가 없다. 대체로 이빨의 성질은 쓴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찻물을 마시면 점차 든든해지고 벌레 먹은 이빨도 저절로 낫는다【『연수』】.

○ 음식을 먹은 뒤에 양치를 몇 번 하면 이빨에 벌레가 먹지 않는다. 양생하는 사람은 새벽에 일어나서 이빨을 맞쪼기 때문에 일생 동안 이빨에 병이 생기지 않는다【『연수』】.

○ 이빨에 누렇고 검은 것이 붙어서 썩은 뼈《爛骨》같이 된 것을 치상(齒牀)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치료하려면 감창《疳》을 깎아 내는 칼《疳刀》로 깎아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빨이 잇몸에 붙지 않는다【『천금』】.

○ 어떤 사람이 중년이 되어 풍병(風病)에 걸려서 늘 소리가 세게 나도록 위아래 이빨을 맞쪼았는데 그로 인하여 120살까지 살았다고 한다【『포박』】.

경옥고(瓊玉膏)

塡精補髓調眞養性返老還童補百損除百病萬神俱足五藏盈溢髮白復黑齒落更生行如奔馬日進數服終日不飢渴功效不可盡述一料分五劑可救癱瘓五人一料分十劑可救勞瘵十人若二十七歲服起壽可至三百六十若六十四歲服起壽可至五百年

生地黃十六斤搗絞取汁人參細末二十四兩白茯苓細末四十八兩白蜜煉去滓十斤

右和勻入磁缸內以油紙五重厚布一重緊封缸口置銅鍋內水中懸胎令缸口出水上以桑柴火煮三晝夜如鍋內水減則用煖水添之日滿取出再用蠟紙緊封缸口納井中浸一晝夜取出再入舊湯內煮一晝夜以出水氣乃取出先用少許祭天地神祗然後每取一二匙溫酒調服不飮酒白湯下日進二三服如遇夏熱置陰凉處或藏氷中或埋地中須於不聞鷄犬聲幽淨處不令婦人喪服人見之製時終始勿犯鐵器服時忌食葱蒜蘿葍醋酸等物【入門

정(精)과 수(髓)를 불쿠어 주고 진기를 고르게 하며 원기를 보하여 늙은이를 젊어지게 하고 모든 허손증(虛損證)을 보하며 온갖 병을 낫게 한다. 또한 정신이 좋아지고 5장이 충실해지며 흰머리가 다시 검어지고 빠진 이가 다시 나오며 걸음걸이가 뛰는 말과 같이 빨라진다. 하루에 두세번 먹으면 종일토록 배고프거나 목이 마르는 일이 없다. 이와 같이 이 약의 효과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1제를 5몫으로 나누어 쓴다면 5명의 반신불수 환자를 치료할 수 있고 1제를 10몫으로 나누어 쓰면 10명의 노채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 만약 이 약을 27살부터 먹기 시작하면 360살까지 살 수 있고 만약 64살부터 먹기 시작하면 500살까지 살게 될 것이다.

생지황(生地黃) 짓찧어 즙을 낸다 9,600g, 인삼(人蔘) 보드랍게 가루낸 것 900g, 백복령(白茯苓) 보드랍게 가루낸 것 1,800g, 꿀(白蜜) 졸여서 찌꺼기를 버린 것 6,000g.

위의 약들을 한데 고루 버무려 사기항아리에 넣고 기름먹인 종이로 항아리 아가리를 5겹으로 싼 다음 또 두꺼운 베천 한 겹으로 단단히 싸서 봉한다. 이것을 물을 넣은 구리솥 안에 띄워 놓되 항아리 아가리가 물 밖으로 나오게 한다. 그 다음 뽕나무장작으로 3일 동안 불을 땐다. 만약 솥의 물이 줄면 더운물을 더 붓는다. 3일 동안 달인 다음 꺼내 다시 밀먹인 종이로 항아리 아가리를 잘 싸서 봉한다. 이것을 우물물 속에 하루동안 담가 두었다가 꺼내 다시 먼저 끓이던 물에 넣고 24시간 동안 달인다. 물기가 다 없어지면 꺼낸다. 먼저 조금 떼내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내고 나서 한번에 한두 숟가락씩 데운 술에 타 먹는다. 술을 마시지 못하면 끓인 물로 먹는다. 하루에 두세 번씩 먹는다. 만약 여름철 더울 때에는 서늘한 곳이나 얼음 속이나 땅 속에 파묻어 두어야 한다. 반드시 닭과 개소리가 들리지 않는 조용한 곳에 두어야 한다. 약을 만들 때에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무쇠그릇을 쓰지 말 것이며 먹을 때에는 파, 마늘, 무, 식초, 신 것 들을 먹지 말아야 한다【입문】.

『衛生方』生地黃八斤人參三十二兩白茯苓二十四兩白蜜五斤

○本朝永樂中太醫院會議加天門冬 麥門冬 地骨皮各八兩進御服食賜號益壽永眞膏

『위생방』에는 “생지황(生地黃) 4.8kg, 인삼(人蔘) 1.2kg, 백복령(白茯苓) 900g, 꿀(白蜜) 3kg을 쓴다”고 씌어 있다.

○ 영락(永樂) 때에 태의원회의에서 천문동(天門冬), 맥문동(麥門冬), 지골피(地骨皮) 각각 300g을 더 넣어 약을 만들어 임금에게 올려 먹게 하였는데 임금이 그 약이름을 익수영진고(益壽永眞膏)라고 불렀다.

[참고]

복자(福者, Blessed)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준성인(準聖人).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이같은 존칭에는 가경자(可敬者) ·복자 ·복녀 ·성인(聖人) 등이 있다. 여복자는 복녀(福女), 여성인은 성녀(聖女)로 특별히 구별하여 호칭하기도 한다. 초대교회에서부터 순교자들에 대한 존경과 의탁(依託)이 있었는데, 차차 그들을 기념하는 날이 달력에 삽입되기 시작하였다. 로마의 대박해가 끝날 무렵, 그러한 공경이 신앙의 증거자에게로까지 확대되었고, 마침내는 뛰어난 그리스도교도의 덕행을 보인 사람들과 교회의 교의(敎義)를 발전시킨 학자, 성직자들에 대한 공경이 일반화되어갔다. 그 후 교회법(敎會法)은 이들을 공식적으로 현양(顯揚)하는 규정을 마련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죽은 뒤에 그의 덕행이나 순교의 사실이 분명하고, 또 그에게 의탁함으로써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는 증거가 있으면 우선 가경자로 추대하고, 나중에 다시 이들 중에서 시복 후보자를 뽑아 그 지역 주교(主敎)가 복자 ·복녀위(位)의 시복(諡福)을 신청한다. 그러면 재판소가 설치되고 그의 덕행이나 신앙을 위한 죽음 등의 증거를 수집하고, 그것을 전례위원회(典禮委員會)로 보낸다. 위원회에서는 이를 심의하여 교황에게 품신(稟申)하는데 보통 기적이라고 믿어지는 사례가 입증되면 복자 ·복녀의 품(品)을 받는다. 교황은 최종적인 심사를 주재하여, 시복(諡福) 여부를 결정한다. 이렇게 시복된 사람을 남자의 경우에는 복자라 하고 여자인 경우는 복녀라고 부른다. 복자 ·복녀에 대한 공경 권역(圈域)은 어떤 도시나 교구(敎區), 지역 등지에 국한된다.

시복된 사람에 대한 그 이상의 기적이 확인되면 다시 시복의 과정과 비슷한 절차를 거쳐 교황이 시성(諡聖)을 하여 성인(聖人)으로 추대한다. 한국에는 가톨릭 전래의 초기부터 겪은 박해의 결과로 1925년에 기해(己亥) ·병오(丙午)박해 때 순교자 79위의 시복을 시초로, 1968년에는 병인(丙寅)박해 때의 순교자 24위가 시복됨으로써 최초의 내국인 신부(神父) 김대건(안드레아)을 비롯한 103명의 복자 ·복녀가 탄생했다.

[MK뉴스 2014-02-10] 천주교 124위 시복 확정으로 본 조선 순교자들

한국 천주교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230년 전인 17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베이징에서 처음 세례를 받은 이승훈이 이듬해 귀국해 이벽 등 다른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면서 신앙 공동체가 자발적으로 생겼는데, 이를 한국 천주교의 출발점으로 여긴다.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1984년 대한민국에는 가톨릭 성인(聖人) 103명이 탄생했고, 또 30년이 지난 올해 복자(福者) 124명이 새로 생긴다. 지난 8일 바티칸뉴스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位)`에 대한 시복(諡福)을 결정했다. 조만간 교령이 발표되고, 시복식 일정과 장소도 결정된다.

이처럼 한국에 성인과 복자가 잇따라 지정되는 것은 한국 가톨릭 역사가 선교가 아닌 순교 역사에 가깝기 때문이다.

천주교 주교회의 추산에 따르면 조선시대 순교한 가톨릭 신앙인은 최소 2만명을 넘는다. 가톨릭 역사 중 초기 100년은 박해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주교에는 4대 박해라 해서 신해(1791) 신유(1801) 기해(1839) 병인(1866)을 꼽는다.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는 “1866년부터 1871년까지 5년에 걸쳐서 일어난 대박해 한 번에 당시 한국에 있던 가톨릭 신자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8000명이 순교했다”며 “천주교 박해는 1886년 한ㆍ프랑스 수호통상조약 체결과 함께 공식으로 끝이 났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성인과 복자로 추대된 227명은 모두 순교를 한 이들이다. 1차 시성식에서 성인이 된 선조들은 한국인 최초 사제인 김대건 신부를 비롯해 시기적으로 프랑스 선교사들이 들어온 1836년 이후 순교한 이들이며, 이번에 복자가 된 124위는 1791년 신해박해와 1801년 신유박해 희생자들을 포함한다.

추가 시복 대상에는 이들보다 앞서서 가톨릭 초석을 다진 이승훈과 이벽, 황사영, 권일신 등을 포함한다. `조선왕조 치하 순교자 133위`라는 이름으로 시복 작업이 추진되고 있는데, 유학적 분위기의 강학을 천주교의 실천적 분위기로 바꾼 이벽(1754~1785ㆍ세레자 요한)이 대표 인물이다.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은 이벽은 정약전ㆍ약용 형제, 권철신ㆍ일신 형제에게도 복음을 전했다.

두 번째 한국인 사제로 사목한 최양업 신부는 현재 별도 건으로 교황청에서 시복을 검토하고 있는 단계다.

주교회의 관계자는 “한국 시복ㆍ시성은 시기적으로 역순으로 진행되는 특징을 지닌다. 그것은 자발적으로 신앙을 일군 한국 교회의 독특한 역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초기 신앙인들 행적과 자료가 미비한 점도 시복이 늦어지는 이유다.

바티칸 성인 심사는 과학적으로 기적이 일어났는지를 조사하기 때문에 무척 까다롭다. 그러나 순교자는 기적 심사를 면제받는다.

[이향휘 기자]

시사용어

[도선사]

지난달 31일 발생한 여수산단 원유 유출 사고 중심에 도선사(導船士)가 등장했다. 도선사는 항만에 입·출항하는 유조선 등 대형 선박에 탑승해 선박을 부두까지 안전하게 인도하는 일을 한다. 배를 조종하는 조타기를 직접 잡지는 않지만, 조타실에서 배를 어떻게 움직일지 지시한다. 그래서 ‘파일럿’이라 부른다.

안전하게 차량을 대신 주차하는 ‘발레파킹 요원’과 유사한 일을 항구 내에서 하는 것이다. 이번 여수 원유 유출 사건은 유조선을 원유 하역시설까지 제대로 ‘파킹’하지 못해 사고로 연결된 경우다.

한 국도선사협회에 따르면, 국내 도선사는 모두 243명으로 부산항(49명)과 인천항(42명) 등 전국 11개 지역에 도선사회가 구성돼 있다. 여수와 광양항에서 활동하는 여수지회 도선사는 39명이다. 원유 유출 사고 원인을 제공한 도선사 김모(65)씨와 이모(59)씨도 여수지회 소속이다. 여수지회는 3일 본지 통화에서 “사고와 관련해 공식적으로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해 운업계에선 많은 돈을 버는 도선사를 “꿈의 직업”이라 부른다. 작년 4월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자료를 보면, 도선사는 국내 146개 ‘면허형 국가자격’ 취득자 중 월평균 소득 1위였다. 월평균 급여는 878만원이고, 최대 연봉은 1억5000만원에 달한다. 도선사는 특정 회사 소속이 아닌 개인 사업자로 활동한다.

도선사가 되는 길은 어렵다. 해양수산부 장관의 도선사 면허를 받기 위해 치르는 면허 시험 경쟁률은 평균 11대1에 달한다. 도선사협회는 “도선사는 6000t 이상 선박의 선장 경력을 5년 이상 갖춰야 시험 응시 자격이 주어진다”고 했다. 500t 이상 외국 선박은 국내 항구 여건을 잘 모르기 때문에 도선법상 국내 도선사가 반드시 승선해야 한다. 그래서 도선사에게 영어 실력은 필수다. 필기 시험 과목에 선박운용술, 해사법규와 영어가 포함돼 있다. 까다로운 실기시험도 통과해야 한다.

[水先人]

水先人(みずさきにん、: Pilot)とは、多数の船舶が行き交う海峡内海において、それらの環境に精通することが困難な外航船や内航船の船長を補助し、船舶を安全かつ効率的に導く専門家のことをいい、職務を行う区域(水先区)毎に水先人免許(国家資格)が必要。

一般には「水先案内人(みずさきあんないにん)」と呼ばれることの方が多く、正式名称の「水先人」は法律用語、官僚用語である[1]

[pilot]

1. (飛行機・宇宙船などの)操縦士,パイロット.

2. 水先案内人.

3. 指導者,案内人.

[투키디데스 함정]

투키디데스 함정이란 고대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해 ‘패권국과 신흥 강국은 싸우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한 데서 나온 말이다.

[천안문사건]

톈안먼 시위 참가자가 포함된 중국 ‘민주 인사’ 30여명이 지난 2일 자오쯔양(趙紫陽) 전 공산당 총서기의 고향인 허난성 화(滑)현에 모여 자오쯔양과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 톈안먼 사건 희생자에 대한 공동 추모식을 거행했다. 1989년 톈안먼 사건 당시 총서기였던 자오쯔양은 학생 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개혁파의 대표였던 후야오방은 1987년 민주화 시위를 효과적으로 막아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각각 쫓겨났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톈안먼 사건 관련자의 공동 추모식을 막지 않고 있기 때문에 시진핑(習近平) 지도부가 ‘과거와 화해’를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드론]

무인비행기

[치라리즘(チラリズム)]

구하라 잡지논란처럼 인기 연예인의 살짝 보이는 노출을 일본에서는 ‘치라리즘’이라고 한다. 구하라 잡지논란과 같이 팬티가 보일듯말듯한 노출을 ‘판치라’라고 부르며, 앞이 패인 옷을 입고 고개를 숙였을 때 살짝 보이는 가슴골을 ‘무네치라’라고 부른다.

p103a

毛澤東의 大長征

1912년 청 왕조가 멸망한 뒤 군벌이 지배하던 중국은 1927년 국민당의 장제스가 군내에서 공산주의자를 숙청하기 시작하자 전면적인 내전 상태로 들어섰다. 몇차례의 도시폭동 후 공산당은 농민 게릴러 군을 이용하여 농촌에 근거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3년간의 격전 끝에 장제스는 강서 소비에트를 점령했다. 모택동은 1934-35년 대장정에 성공하여 북부의 연안에 근거지를 구축했다. 1937년의 중국 침략으로 양측은 불편한 휴전을 맺었다. 1945년 양측은 다시 전쟁을 시작했고, 1947년의 대반격 끝에 1949년 공상당이 승리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선포되고 장제스는 대만으로 도망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