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福者, Bles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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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성인(準聖人).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이같은 존칭에는 가경자(可敬者) ·복자 ·복녀 ·성인(聖人) 등이 있다. 여복자는 복녀(福女), 여성인은 성녀(聖女)로 특별히 구별하여 호칭하기도 한다. 초대교회에서부터 순교자들에 대한 존경과 의탁(依託)이 있었는데, 차차 그들을 기념하는 날이 달력에 삽입되기 시작하였다. 로마의 대박해가 끝날 무렵, 그러한 공경이 신앙의 증거자에게로까지 확대되었고, 마침내는 뛰어난 그리스도교도의 덕행을 보인 사람들과 교회의 교의(敎義)를 발전시킨 학자, 성직자들에 대한 공경이 일반화되어갔다. 그 후 교회법(敎會法)은 이들을 공식적으로 현양(顯揚)하는 규정을 마련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죽은 뒤에 그의 덕행이나 순교의 사실이 분명하고, 또 그에게 의탁함으로써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는 증거가 있으면 우선 가경자로 추대하고, 나중에 다시 이들 중에서 시복 후보자를 뽑아 그 지역 주교(主敎)가 복자 ·복녀위(位)의 시복(諡福)을 신청한다. 그러면 재판소가 설치되고 그의 덕행이나 신앙을 위한 죽음 등의 증거를 수집하고, 그것을 전례위원회(典禮委員會)로 보낸다. 위원회에서는 이를 심의하여 교황에게 품신(稟申)하는데 보통 기적이라고 믿어지는 사례가 입증되면 복자 ·복녀의 품(品)을 받는다. 교황은 최종적인 심사를 주재하여, 시복(諡福) 여부를 결정한다. 이렇게 시복된 사람을 남자의 경우에는 복자라 하고 여자인 경우는 복녀라고 부른다. 복자 ·복녀에 대한 공경 권역(圈域)은 어떤 도시나 교구(敎區), 지역 등지에 국한된다.

시복된 사람에 대한 그 이상의 기적이 확인되면 다시 시복의 과정과 비슷한 절차를 거쳐 교황이 시성(諡聖)을 하여 성인(聖人)으로 추대한다. 한국에는 가톨릭 전래의 초기부터 겪은 박해의 결과로 1925년에 기해(己亥) ·병오(丙午)박해 때 순교자 79위의 시복을 시초로, 1968년에는 병인(丙寅)박해 때의 순교자 24위가 시복됨으로써 최초의 내국인 신부(神父) 김대건(안드레아)을 비롯한 103명의 복자 ·복녀가 탄생했다.

[MK뉴스 2014-02-10] 천주교 124위 시복 확정으로 본 조선 순교자들

한국 천주교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230년 전인 17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베이징에서 처음 세례를 받은 이승훈이 이듬해 귀국해 이벽 등 다른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면서 신앙 공동체가 자발적으로 생겼는데, 이를 한국 천주교의 출발점으로 여긴다.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1984년 대한민국에는 가톨릭 성인(聖人) 103명이 탄생했고, 또 30년이 지난 올해 복자(福者) 124명이 새로 생긴다. 지난 8일 바티칸뉴스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位)`에 대한 시복(諡福)을 결정했다. 조만간 교령이 발표되고, 시복식 일정과 장소도 결정된다.

이처럼 한국에 성인과 복자가 잇따라 지정되는 것은 한국 가톨릭 역사가 선교가 아닌 순교 역사에 가깝기 때문이다.

천주교 주교회의 추산에 따르면 조선시대 순교한 가톨릭 신앙인은 최소 2만명을 넘는다. 가톨릭 역사 중 초기 100년은 박해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주교에는 4대 박해라 해서 신해(1791) 신유(1801) 기해(1839) 병인(1866)을 꼽는다.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는 “1866년부터 1871년까지 5년에 걸쳐서 일어난 대박해 한 번에 당시 한국에 있던 가톨릭 신자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8000명이 순교했다”며 “천주교 박해는 1886년 한ㆍ프랑스 수호통상조약 체결과 함께 공식으로 끝이 났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성인과 복자로 추대된 227명은 모두 순교를 한 이들이다. 1차 시성식에서 성인이 된 선조들은 한국인 최초 사제인 김대건 신부를 비롯해 시기적으로 프랑스 선교사들이 들어온 1836년 이후 순교한 이들이며, 이번에 복자가 된 124위는 1791년 신해박해와 1801년 신유박해 희생자들을 포함한다.

추가 시복 대상에는 이들보다 앞서서 가톨릭 초석을 다진 이승훈과 이벽, 황사영, 권일신 등을 포함한다. `조선왕조 치하 순교자 133위`라는 이름으로 시복 작업이 추진되고 있는데, 유학적 분위기의 강학을 천주교의 실천적 분위기로 바꾼 이벽(1754~1785ㆍ세레자 요한)이 대표 인물이다.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은 이벽은 정약전ㆍ약용 형제, 권철신ㆍ일신 형제에게도 복음을 전했다.

두 번째 한국인 사제로 사목한 최양업 신부는 현재 별도 건으로 교황청에서 시복을 검토하고 있는 단계다.

주교회의 관계자는 “한국 시복ㆍ시성은 시기적으로 역순으로 진행되는 특징을 지닌다. 그것은 자발적으로 신앙을 일군 한국 교회의 독특한 역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초기 신앙인들 행적과 자료가 미비한 점도 시복이 늦어지는 이유다.

바티칸 성인 심사는 과학적으로 기적이 일어났는지를 조사하기 때문에 무척 까다롭다. 그러나 순교자는 기적 심사를 면제받는다.

[이향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