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전】신라에서 기와가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삼국사기(삼국사기)로 보아 2-3세기 경이며, 주로 궁성(宮城)에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불교의 공인(528년) 이후 많은 사찰이 건축되면서 연꽃무늬가 장식된 수막새가 궁궐이나 사찰건축에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고신라의 기와는 고구려와 백제의 영향을 함께 받았지만 토기에는 초기에는 백제와 유사한 연꽃무늬수막새가 대부분이며, 간혹 얼굴(人面)무늬․귀면(鬼面)무늬수막새도 있다. 연꽃무늬수막새는 통일신라시대에 들어 꽃잎 내부에 자엽(子葉)이 있거나 막새면을 안팎으로 구분하여 꽃잎을 이중으로 배치하고, 테두리(周緣部)에 구슬무늬(珠文)나 꽃무늬 등이 시문되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한다. 연꽃 이외의 주요한 무늬로는 보상화(寶相華)․인동(忍冬)․초화(草花) 등 서화(瑞花)무늬와 봉황․기린․사자․가릉빈가(迦陵頻伽) 등 벽사(僻邪)와 길상(吉祥)을 의미하는 짐승(禽獸)의 무늬를 들 수 있다. 암막새는 통일신라시대에 들어 제작되기 시작하며 당초무늬가 주류를 이루며, 점차 보상화당초․인동당초․포도당초․화엽당초무늬 등으로 변화한다. 한편 새나 짐승무늬와 용․비천(飛天)․구름무늬 등이 베풀어진 것도 있다. 망새(치미)는 화재예방이나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 건물 지붕의 용마루 양끝을 장식하는 기와를 말하는데 보통 매와 새꼬리 모양을 하고 있다. 황룡사터에서 출토된 대형의 망새는 옆면과 뒷면에 얼굴무늬와 연꽃무늬를 서로 번갈아 장식하고 있는 특수한 의장의 대표적인 장식기와라고 할 수 있다. 전돌은 고신라시대에 연꽃무늬나 당초무늬, 사냥(狩獵)무늬가 새겨진 것이 소수 제작되었으나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쌍사슴보상(雙鹿寶相華)무늬가 배치된 것이 유행하게 된다.

CreativeMinds Super Tooltip Gloss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