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기초】중국에서 해상의 교통 ·무역 ·어업 등에 대하여 행해졌던 금제(禁制).
국내의 치안을 유지하고, 밀무역을 단속하며, 외국과의 분쟁을 피하는 것이 목적이며, 동진(東晉) 이래 행하였으나, 명(明)나라 초 명률(明律)로써 공포되었다(1397). 공인된 조공선(朝貢船) 이외에는 무역을 인정하지 않고 ‘한 치도 하선을 불허한다’는 규칙이었다. 소위 왜구나 감합무역(勘合貿易)의 소장(消長)은 이 정책과 표리의 관계에 있다. 명나라 말 최후까지 청나라에 저항한 타이완[臺灣]의 정씨(鄭氏)도 ‘천계령(遷界令)’이라는 철저한 해금 때문에 패배하였다고 한다.
즉, 천계령이란 청(淸)나라 초기에 연해의 경계를 정하고 이것을 역내(域內)로 옮긴다는 뜻으로, 소위 해금(海禁)을 더욱 강화한 해금령(海禁令)으로서 목적은 해상권을 장악하여 반청복명(反淸復明)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정성공(鄭成功)으로부터 직접 피해를 막고, 동시에 연해 주민들과의 교통 ·접촉을 단절시킴으로써 정성공의 물적 ·인적 자원을 고갈시켜 자멸케 하려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이 견벽청야(堅壁淸野) 정책은 명나라 때 왜구에 대비하여 이미 시행한 일이 있었다. 천계령은 1661년에 실시하기 시작하였는데, 적용 범위는 푸젠[福建] ·광둥성[廣東省] 2성(省)을 중심으로 하여 저장[浙江] ·장쑤[江蘇] ·산둥[山東] 등 5성에 미쳤다. 연해 주민을 20 km 오지로 강제이주시켰으나, 1683년에 정성공이 멸망하자 이듬해 전해령(展海令)이 내려지고 천계령은 해제되었다.
청나라에서는 관금(關禁) ·변금(邊禁)과 병칭하였는데, 물론 연해 주민의 생활권에도 중대한 영향이 있으므로 금제를 범하는 자가 끊이지 않았으며, 영국과 청국 간의 난징조약[南京條約](1842년) 이후는 중국 자체의 사항에 국한하였으며, 존재가치도 상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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