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기초】조선의 국방 체제 전체에서 볼 때에는 5위의 중앙군보다 도리어 지방군이 더 중요하였다. 지방에는 처음 남방에 영진군이 있고, 북방에는 익군이 있어서 이원적인 군사 조직을 이루고 있었는데, 1455년(세조 1년)에 군익도 체제로 일원화되었다. 이어 1457년(세조 3)에 이를 진관 체제로 바꿈으로써 지방군제의 기본 체제가 완성되었다. 진관 체제에 의하면 지방에는 도에 병영과 수영을 각기 하나씩 두어서 육군과 수군을 통할하게 하였고, 그 밑에 여러 진을 두었다. 단지, 함경도와 경상도에는 여진과 왜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하여 병영과 수영이 둘씩 있었고, 전라도에는 수영이 둘 있었다. 이러한 지방의 영진에 소속된 군인을 진수군(鎭守軍)이라고 하였다. 이 진수군은 정수 부대인 영진군(營鎭軍), 노동 부대인 수성군(守城軍), 해군인 선군(船軍)으로 구별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진군이었다. 영진군은 양인 농민을 기간으로 한 군대였으며, 교대로 번을 서서 군무에 복무하지만 번을 서지 않을 때에는 농업에 종사하는 병농 일치의 군대였다.
이렇게 처음 다른 체계로 존재하던 중앙군과 지방군은 뒤에 일원화되기에 이르렀다. 즉, 진을 중심으로 한 진관 체제가 성립되면서, 양인 농민으로 구성되어 중앙에 번상하는 시위군과 지방 요새지에서 군무에 복무하는 영진군을 합하여 모두 정병으로 삼아 통일적으로 파악한 것이다. 따라서, 국방력의 중심이 된 양인 농민의 병사는 오직 정병이 되었을 분이며, 이들이 평상시에 농업에 종사하다가 징발되면 한양이나 지방의 요새지에 가서 군무에 복무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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