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國範墓)【문화유적총람】[관리자] 개인(윤주희) [소재지] 경상북도 예천군 보문면 간방리
【유적내용】 윤국범의 본명은 윤병정(尹柄政)이고 자(字)는 국범으로 1882년 예천에서 태어났다. 항일투쟁시 자인 국범을 사용하여 일제 문헌에도 윤국범이라 기록되고 지금까지도 자로 알려져 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의병을 모집하여 이강년 진(陣)으로 달려가 유격장(遊擊將)이 되어 맹활약 하였다. 1908년 대장 이강년이 체포되어 의병이 해산됨에 일시 고향에 돌아와 다시 의병을 소집, 대장으로 추대되었다. 가산(家産)을 내어 군기(軍器), 군량(軍糧) 등을 준비하고, 200여 명의 의병을 훈련시켜 다른 의장(義將)들에게 보내고 자신은 100여 명의 의병을 직접 지휘하여 소백산맥을 중심으로 영주, 풍기, 제천 등에서 3여 년에 걸쳐 적을 공격하였다. 이들 고장에는 일군 분견소(日軍分遣所)를 유지하지 못하였다 한다. 1910년 11월에 본거지가 포위되어 식량이 떨어지고 추위가 닥쳐와 일시 해산하고 고향에 돌아와 동지들을 다시 규합하다 동 12월에 체포되었다. 1911년 3월 3일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교수형을 당하니 당시 30세였다. 당시 일경(日警)에서는 각처에 방(榜)을 붙여 그에게 현상(懸賞)을 걸었다하니 얼마나 그의 활약이 컸는지를 알 수 있다. 현재 묘에는 봉분 뿐이며 배위(配位) 양주 송씨와 합실(合室)하였다. 봉분 높이 90cm, 직경 3m정도이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중, 377.
【관리번호】 757-810-310-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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